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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왔어요, 배꼽이 떨어졌어요~
집에왔어요, 배꼽이 떨어졌어요~
  • 윤진희
  • 승인 2002.04.02 00:00
  • 호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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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희의 육아일기 3]
집에 왔어요.

12월 30일 일요일 퇴원하는 날.
병원에서는 하루더 있다가 퇴원하라고 했는데, 남편은 광주에 내려가 있는 상태이고 친정집은 하필 이때 이사를 해서 너무너무 바쁘고, 언니 또한 직장일로 너무 바빠 병원에 있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며칠을 혼자 지냈다. 모두들 미안해서인지 그냥 하루 앞당겨 퇴원해서 친정집에 있으라고 하고 또 내 몸도 그럭저럭 회복된 것 같고 무엇보다 병원생활이 너무 지루해서 하루 일찍 퇴원했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무척 차다. 배냇저고리에 속싸개를 하고 또 두꺼운 수건으로 싸고 겉싸개를 했는데도 걱정이다. 처음하는 세상구경인데....
우리 아기, 낯설고 무서웠는지 차에 타자마자 울기 시작해서 차에서 내리고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까지도,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울기만 한다. 배가 고팠는지 젖을 물리니 그제서야 그친다.

충격이 크겠지. 안정적인 엄마 배속에서 10달 동안 웅크리고 지내다가, 배속에서 갑자기 꺼내어져 네모난 칸막이 안에서 일주일을 지내다가, 갑자기 확 넓어진 공간과 차가운 공기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들을 접했으니...
하루종일 잠도 못자고 울다가 설사하고 또 울다가 설사하고... 온 식구가 초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모두들 신생아실 칸막이를 통해서만 아기를 만나다가 가까이에서 보면서 누굴 닮아 저리 예쁘냐고 마냥 기쁘고 신기해한다.

정말 예쁜 우리아가!
예쁜 눈, 예쁜 보조개, 입을 오-하고 오므리며 배내짓하면 정말 천사같은 우리 아가! 건강하게 잘 자라라!

12월 31일 월요일
배불리 먹고나면 두세시간 푹 자고 배고프면 또 일어나서 엄마 젖 오른쪽 왼쪽 15분정도 빨고, 분유 40ml 정도 더 먹고 또 두세시간 정도 푹 자고 - 저렇게 순하고 착한 아기가 또 있을까.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설사가 아닌 노오란 똥을 예쁘게 누기 시작했다.


배꼽이 떨어졌어요.

2002년 1월 3일 태어난지 열흘 지난날, 빼꼽이 떨어졌다.
새벽 6시경 우리 아가 칭얼칭얼거려서 기저귀를 봤더니, 흰 천기저귀에 뭔가가 붙어 있다.
처음엔 응아한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배꼽에 붙어있던 탯줄이 떨어진 거였다.
엄마랑 아가를 연결시켜주던 것. 배속에서 10달 동안 우리 아가에게 영양분을 주던 귀한 것.
이제 필요 없어져서 말라서 떨어진 것이다.

이름짓기

2002년 1월 8일 우리 아가 이름 "이 다 현" 태어난지 보름만에 이름이 확정되었다.
첫째 때는 아들이라서 시댁에서 돌림을 따서 지어야 한다며 작명소에서 미리 이름을 지어 오셨는데, 이번엔 딸이라 돌림을 안 따도 된다길래 우리가 짓기로 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고 부르기 쉽고, 예쁜 이름 짓는다며 보름동안 의견만 분분했다. 오빠네 애들이 '영'자로 이름이 끝나서 나는 민영이, 남편은 다영이로 하자하다가 결국 오늘 시어머니께서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어오셨다.
애초에 이모가 지었던 이름과 똑같은 다현이 - 작명소에서 이름 지으면 촌스러운 이름일거라며 못마땅해하던 남편도 '다현'이라는 이름은 맘에 들어했다. 이왕이면 작명소에서 '다현'이로하면 초년중년말년 모두 만사형통이라는데, 손해볼 것 없다며 "다현"이로 확정지었다.
"이 다 현" 이제 내 딸 이름은 이다현이다. 이름도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예쁜 다현이, 작명소에서 뜻풀이한 만큼 건강하고 예쁘게, 그리고 앞날이 창창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출생신고하기

2002년 1월 11일 다현이, 드디어 출생 신고하다.
우리 다현이 출생신고 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동사무소에 도착했다. 출생신고서 양식을 두장 작성하라고 적혀있다.

'앗! 본적이. . . . 참, 내 본적이 내 본적이 아니지. 뭐더라. . . 서울시였는데. . . .'
할 수 없이 광주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우리 본적이 뭐지?"
아직까지 본적도 모르냐는 듯이, 한심하다는 말투로 서울시 강동구 어쩌구 한다. 기분이 상한다. 내가 30년 동안 써오던 내 본적을 놔두고 남편 본적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인데. . . 그 본적을 모른다고 남편이 한심해 하다니...
전화를 끊고, 본적을 썼다.

그런데 그 다음, '앗! 본이. . . 본이 어디더라?'
할 수 없이 또 전화를 했다. 이번엔 내가 되려 뭐 이런 개떡같은 경우가 다 있냐며 호주제는 없어져야한다며 한바탕 화를 낸 후, "근데 자기 본이 어디야?" 하고 물었다.
남편이 연안이라며 이번엔 부드럽게 "뭐 더 물어볼건 없어?"하고 말한다. "응 됐어"하고 끊었다. 사실은 한자로 연안을 어떻게 써야하는데.. 하고 물어야했는데,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내 스스
로 알아내기로 했다. 바로 옆에 컴퓨터도 많이 있겠다-. 4년 전 혼인신고 할 때 기억을 되살려서 연안을 한자로 찾아서 쓰고. . .

나름대로 작성을 다 해서 담당직원에게 내밀었는데, 아래 양식에 있는 내용을 자세하게 안 썼다고 자세히 써달랜다. 구체적인 아빠 엄마 직장 직종 학력 동거년월일 등 내가 보기엔 모두 사생활침해에 해당되는 거다. 애 출생 신고하는데 엄마아빠 직업은 왜 적어야하고, 학력은 왜 필요하단 말인가. 한바탕 난리를 폈는데, 담당직원은 통계처리상 어쩔 수 없다며 부탁을 한다. 참내 - 엄마 아빠가 무직이면 애기 출생 신고 할 때조차 무직임을 써야 한단 말인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싶다. 그래도 썼다. 담당직원이 뭔 죄가 있나싶어서.

그런데 이번엔 신고자를 '윤진희', 관계 '모'로 해서 사인을 했더니, 그걸 '부'로 고쳐 달랜다. 엄마 이름으로 해서 본적지에 서류가 가면 누군지 몰라서 되돌아오는 수가 많다며.
정말 화가 나서 미치겠다. 나는 이제 내 본적도 없어지고, 태어난 딸아이를 남편본적으로 올리는 것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데,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남편본적지에 내 이름으로 신고를 하면 알아보지도 못한다니- 난 그럼 뭔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한참을 담당직원에게 빌어먹을 호주제를 폐지해야한다느니 하며 퍼붓다가 결국 다시 작성했다. 남편이름으로 신고를 하고, 남편이름으로 사인을 했다. 이렇게 화가 날 수가.

그래도 출생 신고 후 떼어본 주민등록등본에 우리 다현이 이름이 올라온 것을 보니 기분이 확 풀린다.
011224 - 4****** 으로 적힌 다현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읽어보며 동사무소에서 열낸 일이 모두 잊혀진다.

우리 다현이가 딸아이를 낳고 출생 신고할 때쯤엔 제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호주제는 분명 폐지되었겠지?

모유를 포기하다.

2002년 1월 15일 월요일
모유가 나오지를 않는다. 며칠동안 다현이에게 먹이지를 못해서 그냥 말라버렸다. 계속 마사지를 하고 유축기로 짜내고 해야 했었는데
몸이 안좋아서 한약에다가 스쿠알렌을 많이 먹었더니 다현이가 설사를 하루종일 해댔다. 설사를 하더라도 난 모유가 더 좋다고 생각했기에 계속먹이려 했는데, 며칠을 계속 설사를 해서 엉덩이가 온통 시뻘겋게 짓물렀다.

온 식구가 난리다. 엉덩이가 저리 짓무르도록 설사를 하면 애가 얼마나 힘들겠냐구, 약을 먹지 말든가 모유를 먹이지 말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그래서 한약과 스쿠알렌이 내 몸에서 배출될때까지 잠깐 수유를 중단한건데.... 젖이 아예 나오지를 않는다.
여태까지 애절하게 젖을 먹였다.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로 젖을 열심히 빨렸는데도 젖이 잘 나오지를 않고, 젖양이 늘어나지도 않아서, 다현이는 계속 젖을 먹고나서도 분유를 40ml 이상씩을 더 먹었다. 우족도 사서 고아먹고했는데....
온 식구가 애기 수유습관만 나빠진다고 뭐라 그러더니, 결국 옳다구나하며 아예 분유만 먹이는 걸로 바꿔버렸다. 나 너무 속이 상한다. 내 딸인데, 난 되든 안되든 모유 끝까지 먹이고 싶은데, 모두들 누구도 누구도 분유먹고도 잘만 건강하게 컸다며 유난떨지 말랜다.

내 품에 안기면 본능적으로 젖을 찾아서 그렇게 열심히 물고 빨던 우리 다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다현이가 내 젖을 물고 있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인데. . . 아빠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느낄 그런 행복감, 엄마와 다현이와의 일체감!
그런 행복을 포기해야하나. . .

다현아! 엄마 젖이 아닌 분유를 먹더라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다.

>>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