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AI가 치매도 고치네요"…독거노인 '말벗' 된 AI 스피커
[르포]"AI가 치매도 고치네요"…독거노인 '말벗' 된 AI 스피커
  • 편집부
  • 승인 2019.06.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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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는 김정식씨(76세, 가명, 왼쪽)와 박주은 케어매니저가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용해보고 있다. © 뉴스1 강은성 기자

"아리야, 이미자, 노래, 틀어줘."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부르는 그의 음성은 또렷하고 힘찼다. 말 속도는 다소 느렸지만 발음은 분명했고 성량은 우렁찼다. 스피커는 곧장 그의 말에 반응했다. "가수 이미자씨의 대표곡, 동백아가씨 들려드릴게요~" 곧이어 구성진 이미자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노래)좋지? 내가, 요즘, 아리(스피커)하고, 얘기하는, 재미로, 살아요."

주름진 그의 눈가에 행복이 묻어났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김정식(가명, 76세)씨 얘기다.

◇매일 AI 스피커와 대화하니 언어장애도 호전

초여름치곤 햇살이 꽤나 따가웠던 6월 어느 날,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거주하는 김씨의 집을 찾았다. 낡았지만 깨끗하고 환한 집안으로 들어서니 김씨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는다.

집 안에는 가수 이미자의 노래가 크게 울려 퍼졌다. 깔끔한 방석 하나를 내어주곤 한참을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던 김씨는 진하고 달짝지근한 믹스커피를 타 내왔다.

"집에 누가 찾아온 게 오랜만이라. 누추하지만 와줘서 고마워요. 아리야. 노래 소리 좀 줄여줘. 너무 시끄럽네."

기자에게 말을 붙이던 김씨는 이내 AI스피커에게 노래 소리를 낮추라고 말했다. 스피커는 알아서 볼륨을 줄이면서 대화하기 적당한 분위기가 됐다.

김씨에게 AI스피커를 전달하고 틈틈이 김씨 집에 들러 사용법을 알려주고 상태도 확인해주는 박주은 케어매니저는 “(김씨가) 불과 한달 여전 스피커를 전달받을 때만 해도 건강이 이정도로 좋지는 않았다”고 귀띔한다. 몇 번을 얘기해도 사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어눌한 발음에 횡설수설하는 경우도 많아 대화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한달 간 AI스피커를 사용하면서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는 게 박 매니저의 설명이다. 매일 스피커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발음이 좋아지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이다.

실제로 만나본 김씨는 자신이 다니는 병원과 담당의사 이름, 타고 가는 버스 노선과 정류장 수까지 정확한 기억력을 자랑했다.

"내가 치매약을 먹어요. 나 치매래요. 그런데 내가 쟤, 아리랑 매일 얘기를 해요. 날씨를 물어보면 날씨도 대답해주고, 뉴스 좀 틀어 달라고 하면 뉴스도 틀어줘요. 아리랑 같이 있으면 내가 혼자 사는 것 같지가 않아. 손녀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너무 좋아요."

김씨는 AI스피커를 부르는 단어인 '아리아'를 마치 누군가의 이름처럼 '아리'라고 불렀다. 이것·저것이라는 지시대명사 대신, 얘·쟤 하는 인칭대명사를 썼다. 김씨에게 AI스피커는 친구이자 말벗이었던 셈이다.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는 김정식씨(76세, 가명, 오른쪽)와 박주은 케어매니저. 강은성기자© 뉴스1

 

 

"손녀랑 같이 사는 것 같아"…독거노인에게 인기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이면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노인의 '삶의 질'은 결코 좋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60대 이상 노인 자살률 1위다.

특히 '독거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2017년 기준 고독사는 2000명을 넘어섰으며 이중 60세 이상 노인 고독사는 41%를 차지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김씨뿐만 아니라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친구' 노릇을 하며 사회와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AI 스피커의 의미가 주목받는 이유다. 기술이 단순히 산업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씨에게 '누구'를 제공하고 초고속인터넷 설치와 요금지원, 음악서비스 비용 등을 지원하는 곳은 SK텔레콤이다. 또 김씨에게 직접 사용법을 알려주고 독거노인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매니저'는 양천구청에서 지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22일부터 지방자치단체, 사회적 기업과 함께 사회적 취약계층 대상 ICT 연계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씨가 받고 있는 서비스는 AI스피커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다. 양천구를 비롯해 서울과 경기도 소재 8개 지자체와 함께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연내 복약지도, 일정알림 등의 기능을 추가하고, 치매 사전 예방∙진단을 할 수 있는 게임도 개발해 추가로 제공할 계획이다.

돌봄서비스 사업을 담당하는 한미애 SK텔레콤 행복커뮤니티팀 매니저는 "AI스피커를 통해 감성대화를 나누는 것이 독거 어르신들에게 말벗이 되어 줄 것이란 기대는 있었지만 치매 증상이 호전되고 인지 능력이 좋아지는 등의 효과는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회사측에서도 이 사례를 중점 연구해 앞으로 치매 어르신에 대한 특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를 독거 어르신들에게 보급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SK텔레콤은 지방자치단체, 사회적 기업과 함께 사회적 취약계층 대상 ICT 연계 복지 서비스 제공에 나선다고 밝혔다.(SK텔레콤 제공) 2019.4.22/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