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반환점]통합-미완의 청사진…"진영 초월한 인사" 과제
[文정부 반환점]통합-미완의 청사진…"진영 초월한 인사" 과제
  • 김용안 기자
  • 승인 2019.11.0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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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당일인 지난 2017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사를 방문해 정우택 원내대표와 악수를 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약속대로 이날 야당 당사를 돌면서 야당 지도부와의 협치를 강조했다. © News1 박세연 기자

2017년 5월 10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중앙홀(로텐더홀)에 문재인 대통령이 섰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읽어내려갔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빚어진 '5월 대선'의 승자는, 역대 대통령처럼 넓은 국회 마당에서 성대한 취임식을 갖진 못했다. 그래도 어느 역대 취임사 못지 않게 희망찬 포부를 담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통합'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은 돋보였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는 취임 당일 약속대로 야당 당사를 일일이 찾아가 소통했다. 같은 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첫 인선도 발표했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첫날'이 그렇게 펼쳐졌다. 그가 취임사에서 내세운 '통합'과 '소통'은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흘렀다.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문 대통령이 꿈꿨던 '진정한 국민통합'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반목과 대립, 갈등은 여전히 국민들 사이에 거대한 벽처럼 버티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길목에서 벌어진 '조국 사태'는 상징적이었다. 광화문으로, 서초동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분노들이 거리에 흘러넘쳤다.

그렇게 해서, 2년 반 전 "국민통합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국민들이 사라져 갔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지명이 불러왔던 두 달여의 극심한 혼란에서 보여지듯 '통합'과 '갈등'이 현실 정치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인사(人事)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부분을 잘 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국민통합 정신으로 '대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핵심 인사를 국민들로부터 추천받는 '국민추천제' 도입도 내걸었다. 대선 기간 민주당에는 '통합정부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이 생겼다.

문 대통령이 "정의를 추구하는 가치가 같은 사람은 당적과 상관없이 일하겠다"고 말했다고, 측근들이 대통령의 '통합 구상'을 전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박근혜의 경제교사'로 이름을 알렸던 김광두 전 국가미래연구원장이 임명되는 등 취임 직후 통합정신을 구현하는 인사가 일부 이뤄지기도 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던 문 대통령의 취임사가 무색하지 않은 듯했다.

 

 

 

 

 

 

 

지난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 © News1 국회사진취재단

 

 

그러나 인사를 통한 통합의 구현은 더 이상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당적이 다른 인사의 내각 발탁까지 바라기는 무리였다고 해도, 이번 정부 들어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공직자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모두 22명에 이른다는 점은 뼈아프다. 이제 임기 절반을 왔을 뿐인데 이명박 정부(5년 간 17명)와 박근혜 정부(4년9개월 간 10명)를 훌쩍 제쳤다.

그래서 임기 반환점을 맞아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을 다시 회자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조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문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스승'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의 김우식 당시 연세대 총장을 삼고초려 끝에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진보 대통령'과 '보수 비서실장'의 호흡은 성과를 거뒀다. 노 전 대통령은 진대제 삼성전자 대표를 정보통신부장관으로 발탁해 국정 활력을 도모하기도 했었다.

김우식 전 실장(현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이 주최한 사회계 원로 오찬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번째로 '인사'를 꼽으며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다.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집권 후반기 과제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인재의 발탁을 주문했다.

정 전 총리는 6일 뉴스1과 통화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면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며 "정권 창출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명박정부)이 집권 후반기 '통합'을 위해 필요한 한 가지를 묻는 질문에 '소통'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천 전 수석은 통화에서 "소통이라는 게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며 "자기 편 이야기만 듣지 말고 취임사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지혜를 동원해도 잘 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만 의논해서 정책이 올바로 될 수 없다"며 "야당 등 여러 의견을 다 들어서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주최로 열린 '문재인정부 국정성과와 향후과제' 토론회에서 나온 쓴소리도 주목할 만하다.

신경아 한국여성학회장(한림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 전반기의 문제점의 하나로 "지지세력 확대"를 꼽으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난 시간 동안 소위 '친○세력'이라고 불리는 집단 이외에 좌측도, 우측도 더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의 인사 기조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흐르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정 철학의 안정적인 이행을 중시하는 것인데, 반면에 파격을 통한 분위기 쇄신이나 통합정신의 구현은 어려워진다.

이에 연말 연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문 대통령의 다음 인사가 주목된다. '최장수 총리'에 오른 이낙연 국무총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12월이나 1월에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맞춰 아직 남아 있는 1기 내각 '원년 멤버'들도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게 순리라는 관측이 많다. 개각을 전후로 청와대 참모진도 일부 개편이 가능하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 첫 인사가 될 다음 개각 및 청와대 개편에서 문 대통령이 얼마나 '통합'과 '소통'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남은 임기 절반의 성패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