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30 06:42 (금)
코로나 시대 '집콕'이 불러온 역설…역대급 호황 누리는 화학사
코로나 시대 '집콕'이 불러온 역설…역대급 호황 누리는 화학사
  • 이재인 기자
  • 승인 2020.10.14 07: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24일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택배지점에서 기사들이 배송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2020.9.24/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코로나19를 겪으며 석유화학 업계가 예상하지 못했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제활동은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만큼 집에서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관련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10월 둘째주 고부가합성수지(ABS) 스프레드(제품가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것)는 톤당 972달러를 기록했다. 다양한 모양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는 ABS는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내·외장재 등에 주로 쓰인다.

현재 스프레드 수준은 1년 전인 지난해 4분기 평균(톤당 472달러)보다 2배 이상 높다. 같은 양의 ABS를 팔았을 때 이전보다 이익이 2배 이상 남는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영향이 컸던 올해 초 톤당 30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던 점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ABS 스프레드는 10월 초 한때 톤당 1000달러를 넘기도 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현재 ABS 스프레드는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ABS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가전제품의 내·외장재로 쓰이는 ABS의 수요도 덩달아 뛴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ABS는) 과거 특수를 누렸던 2010년과 2017년보다 지금이 더 호황"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서비스 매장(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뉴스1

 

 

바닥재·창호 제품 등에 주로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수요도 크게 늘었다. 10월 둘째주 기준 PVC 스프레드는 톤당 533달러로, 200~300달러 수준이었던 2018년과 비교하면 두배 가까이 높아졌다.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외부활동을 줄이고 집에 있는 사람이 늘면서 인테리어 수요가 증가한 게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포장재의 원료인 폴리올레핀(PO) 스프레드도 올해 1분기에는 톤당 519달러였지만, 10월 첫째주에는 톤당 1770달러까지 뛰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쇼핑과 음식 포장·배달이 늘어난 결과다.

이 밖에도 마스크 필터의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 손 세정제와 관련된 아세톤, 의료용 장갑의 재료로 쓰이는 NB라텍스 등 다른 코로나19 관련 화학제품의 가격도 꾸준히 급등하면서 연중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4월15일 서울 중구 명동주민센터에서 선거참관인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2020.4.15/뉴스1 © News1 정지형 기자

 

 

일부에선 경제 위기에 빠진 각국 정부가 저금리 등 각종 부양책을 내세운 게 호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증가했지만, 해외여행도 가지 못하고 외식도 못하게 되자 집에서 이뤄지는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어진 반면 언택트와 관련된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석유화학 산업의 특성상 수혜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련 기업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지난 12일 LG화학은 올해 3분기 9020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ABS는 LG화학의 전체 석유화학 사업 매출액의 29%(이하 2분기 기준), PVC는 1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 밖에 전세계 NB라텍스 시장점유율 1위인 금호석유화학 등 다른 화학사들의 실적도 개선이 예상된다.

당장 코로나19가 종식되긴 힘든 만큼 석유화학 제품의 호조는 4분기에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석유화학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역설적 수요가 발생했다"며 "백신·치료제 개발도 아직 언제가 될 지 몰라 관련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