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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범죄 '스토킹'…처벌법 도입에도 실효성 여전히 미흡
끔찍한 범죄 '스토킹'…처벌법 도입에도 실효성 여전히 미흡
  • 사회팀
  • 승인 2021.04.0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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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A씨는 몇 달간 만난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에 시달렸다. 헤어진 후 A씨가 사는 오피스텔로 이사온 남자친구는 불법촬영물을 가족에게 보여줄 거라고 협박하고 집앞에서 10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경찰에 두 차례 신고해 경고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경범죄를 무서워 할 것 같냐"며 A씨를 협박했다. 결국 A씨는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야 했다.

#식당에서 일하던 B씨는 단골손님에게 집 주소를 알려준 뒤 혹독한 스토킹을 당했다. 그는 집 앞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딸의 학교까지 찾아가 B씨를 기다리기도 했다. 위협감을 느낀 B씨는 식당을 그만둘 결심을 했지만, 집과 딸의 학교까지 가해자가 아는 상황에서 또 찾아올까 봐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8년 젠더와 입법포럼에서 밝힌 일상에서 스토킹을 당한 이들의 이야기다. 피해자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는 스토킹 행위는 계속해서 반복되다 폭력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피해자와 주변인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결말까지 낳을 수 있다.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25)이 대표적이다. 7일 경찰에 따르면 김태현은 지난 3월23일 노원구 한 아파트에 있는 세 모녀 주거지에 배달기사라고 속이고 침입한 뒤 큰딸 C씨(24)의 동생(22)을 살해했고, 이후 귀가한 C씨 어머니(59)와 C씨까지 차례로 살해했다.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C씨가 연락처를 바꾸고 연락을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경남 진주시 아파트에 방화하고 흉기를 휘둘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도 이웃인 여고생을 스토킹하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경남 창원에서는 10년 동안 알고 지낸 40대 남성이 식당 여주인이 자신의 호감을 무시했다며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당시 피해자에게 100여 통 이상 전화를 하는 등 스토킹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는 심각한 강력범죄의 '전조'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대부분 '경범죄'로 분류돼 대부분 최고 8만원의 범칙금 수준에서 끝났다.

처벌을 받는 가해자도 일부에 불과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신고가 관리되기 시작한 2018~2020년 7월까지 신고 건수와 처벌(통고처분·즉결심판) 건수를 비교해 보면 신고 건수 대비 처벌 건수는 2018년 19.62%, 2019년 10.6%, 2020년 7월 10.8%에 그쳤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까지는 스토킹 범죄의 경우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가 스토커에게 폭행을 당하지 않는 이상 국가공권력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 자체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씨가 4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1.4.4/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스토킹처벌법 '상징적'이나 '실효성' 떨어져…수사기관 역량 높여야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스토킹 범죄 관련 법률 제정에 나섰다. 지난달 24일에는 국회에서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처벌법) 제정안을 가결하면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됐다.

이번에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은 상대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당사자나 가족 혹은 동거인에 접근해 따라다니는 등 불안감을 유발하면 스토킹 행위로 규정한다. 주거지를 서성거리거나 주거지 인근의 시설물 등을 훼손하는 행위,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물건을 보내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런 행위를 지속, 반복하면 범죄로 규정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며 흉기를 휴대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형이 늘어난다.

또 경찰은 피해자나 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통신이용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스토킹을 범죄화한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반의사불벌죄'가 남아있다는 점이 꼽힌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부부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 정보나 취약점을 들고 협박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처벌에 대해 많은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는 '지속성·반복성'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스토킹이 추상적인 개념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를 스토킹 범죄로 볼 것인지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피해자를 위한 보호제도가 미비하고 경찰의 초동대처 권한이 '접근금지, 전화제한' 등에 그친다는 점도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제도가 필요하며, 스토킹 범죄를 다루는 수사기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승 위원은 "스토킹 행위가 처음 이뤄졌을 때 지속적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성행 교정을 하는 것이 효과적"며 "재범 위험성과 중대 참고인에 대한 위해 정도를 고려해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해자를 구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속 기간동안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가해자의 성행을 교정하는 시간으로 삼는 등 형사 정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 위원은 이를 위해 각 수사기관마다 구체적인 업무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서 인권이사 역시 "스토킹 범죄에서 사건 초기에 개입하는 경찰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스토킹이 첫 행위에서 단절되도록 하는 게 핵심인만큼 스토킹 전담 경찰관 등이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역랑과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김 팀장도 "여성폭력, 스토킹에 대해서 경찰이 이해하지 못하면 스토킹처벌법 등의 제도가 작동하기조차 어렵다"며 "관련 제도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내의 교육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