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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露齒菩薩!
화엄사 露齒菩薩!
  • 수원신문
  • 승인 2003.08.24 00:00
  • 호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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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의 중국성답사기6/ 보살상이 된 딸

운강석굴을 본 다음 대동시내에 있는 상·하 화엄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상화엄사는 관광객들을 받지 않는단다. 할 수 없다. 하화엄사만 볼 수밖에...

이 절은 화엄종이 매우 융성했었던 요나라 때(1038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화엄사의 정전금당인 박가교장전(薄伽敎藏殿) 내부에는 장경궤라고 부르는 중층 벽장에 있다.

총38칸으로 된 이 벽장에는 명·청 시대의 경전 1천700여종 약 1만8천권을 소장하고 있단다.

이 곳은 공예품으로서 요나라 시대의 건축구조를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한편 박가교장전에는 요나라때의 31체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운강석굴과 함께 대동이 전세계에 자랑하는 관광자원의 하나이다.

이 가운데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는 보살이 있어 이채롭다. 이름하여 노치보살(露齒菩薩).

불사에 조각장으로 참여한 늙은 아버지를 도와주러 남장을 하고 온 효심 깊은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병약한 아버지가 감독관의 채찍을 맞지 않도록 열심히 일을 도왔으나 결국 여자의 몸임을 들켜 버렸다.

군인과 남자들만 있는 흉흉한 공사판에서 위험에 처하게 된 처녀는 살짝 이를 드러내는 웃음을 지으며 군사들을 한번 돌아본 뒤 종을 주조하기 위해 끓이는 쇳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후 아버지는 딸의 모습으로 보살상을 만들었다.

가슴 아린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가만히 보살상을 올려다 본다.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피워보지도 못한 젊음에 대한 서글픔이었을까? 아니면 저들을 용서하겠다는 뜻이었을까?

아직 수양이 덜 된 내 눈에는 처연한 표정으로 비친다.

아쉬움 하나!

왜 화엄종의 중요사찰이면서 스님이 없을까? 왜 불전을 유치장처럼 쇠창살로 막아 놓았을까?

물론 도난의 위험 때문이라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박제된 유산을 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녀보살의 미소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아프게 남았다.

화엄사를 나와 점심을 먹은 뒤 선화사를 둘러본다.

이 절도 화엄사와 마찬가지로 스님들이 없다.

절간은 웅장하지만 황량하다는 느낌이 든다.

늙은 여자 관리인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면서 불전에 올릴 1m 정도 길이나 되는 향을 팔고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오래된 절이라니 부모님을 생각하며 향을 피워 올렸다.

선화사는 일명 남사라고도 불리는데 당나라 개원년간인 713년에서 742년 사이에 창건되어 개원사라고도 불렸다.

이후 후진대에 대보은사로 개칭하기도 했으며 병란을 당해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던 것을 금나라때와 명나라때 재건, 수리했다.

대웅전과 보현각은 건축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건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