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0:03 (토)
시는 '명분'을 노조는 '실리'를
시는 '명분'을 노조는 '실리'를
  • 김경호 기자
  • 승인 2003.08.26 00:00
  • 호수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원시와 노조 실무교섭 오는 9월6일부터 진행, 노조와 시 한걸음씩 양보

"시는 명분을, 노조는 실리를 챙겼다."
 
수원시와 공무원노조의 줄다리기가 서로 명분과 실리찾기로 이어지면서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28일 시가 변형적인 주5일 근무제 전면 폐지 등 21가지 안에 대한 정기교섭을 받아들이지 않자 1인 시위에 들어갔고 수차례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가 지난 6일 첫 면담이 성사됐다.

하지만 시장이 노조가 아직은 불법 단체라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으면서 노사 양측은 급냉각상태로 빠져들었다.

시는 중간간부들 대다수가 아직까지 노조를 불법 단체로 인식하는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을 노조에 전달했고 노조는 투쟁의 수위를 높여갔다.

결국 지난 21일 오후 4시께 노조 집행부와 김용서 시장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면서 교섭에 대한 이견차이가 좁혀졌다.

김 시장은 불법 단체라는 인식에서 한 걸음 양보해 실무진끼리 협의를 약속했고 노조는 노사의 동등한 지위라는 입장에서 양보해 실무교섭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노조와 시는 오는 9월6일부터 시작되는 실무교섭을 앞두고 교섭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또 26일 오후 6시30분께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2003 단체교섭 경과보고 및 조합원 결의대회를 갖고 앞으로의 교섭방향을 설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역본부 수원시지부 관계자는 "실무교섭을 통해 공무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교섭을 이뤄낼 것"이라며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리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운영위원회 내부의 결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시장 '실무교섭 하라' 지시 

"시장은 중간관리자들이 노조를 불법 단체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고려하는 것 같았다."

지난 21일 김 시장과 대화 자리에 들어갔던 한 공무원 노조 간부의 평가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공무원노조는 현재 법외 단체로 구성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수원시 내부 중간관리자들의 시각은 "노조가 강성이다" "아직 법이 없으니까 불법 단체다"라는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런 과정에서 고위 간부들과 중간 간부들은 시장에게 노조와의 교섭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보고를 계속했고 대화 자체를 가로 막아왔다.

노조는 대화의 자리에서 불법 단체 언급에 대한 시장의 사과와 단체교섭요구, 수원시지부 사무실 확보, 시장과의 대화 자리를 가로막은 간부들에 대한 중징계 인사조치 등을 요구했다.

김 시장은 이날 노조 집행부와의 대화에서 스스로 불법 단체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했고 실무교섭을 진행하라고 자치기획국장에게 지시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김 시장의 결단을 놓고 노조 집행부는 이날 운영위원회에 보고를 통해 결국 20일 동안의 1인 시위를 마무리짓고 오는 9월6일부터 실무교섭에 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불법 시비와 단체성 불인정 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수원시와 공무원 노조의 갈등은 일단락됐고 실무교섭을 앞두고 노사관계의 첫 단추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동등한 노사관계 가능한가 

명분을 선택한 시의 실무교섭 진행에는 노사의 동등한 지위 관계가 빠져 있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실무진끼리 교섭을 이끌어 가고 시장과 노조 지부장이 서명하는 방식이지만 시장이 직접 노조와 협상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계설정을 놓고 주변에서는 노조가 합법화된다고 해도 공무원의 특성상 지위나 관계설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돼 교섭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섭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는 이번 대립에서 동등한 지위관계에 일단 선을 그었고 이를 통해 합법화이후에도 노사관계를 풀어가는데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실리를 취했다.

노사관계의 첫 단추를 끼우는데 대화의 실마리에 대한 가닥을 잡았다는 평가다.

향후 합법화 이후 문제는 또다른 관계설정을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노조가 출범하면 일반적으로 사측이 노조의 단체성 인정이나 동등한 지위관계를 권위적으로 해석해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섭에서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인정하게 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절실하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공무원 조직에는 권위주의가 깊게 깔려 있다"며 "동등한 노사 지위 관계를 설정하는데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수원시 공무원노조가 합법화 이후 불균형적인 노사지위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노조와는 태생적으로 다른 '공직사회 개혁' '공무원 복지증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