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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잔다르크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기획연재] 이윤옥 시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20)

밤보다 더 어두운 중경의 땅
방공호 드나들며 일본군 공습 피하던 그날
퍼붓는 포탄에 창자 터져 죽은 중국인 여자
핏덩이 아기만 살아 어미의 젖가슴을 파고든다

눈앞에 펼쳐진 포화 속 비극을 보며
석박사 보장된 길 내 던지고
마구간 새우 잠자며 따라나선 광복군의 길
서안의 최전선으로 떠나는 딸 어깨 다독이며
한국의 잔다르크 되라고 용기 주시던 아버지

나라 사랑하는 사람 많은 듯해도
포탄이 비처럼 퍼붓는 전선으로 갈자 많지 않아
낯선 풍토 견뎌내다 병든 몸
후송된 후방에서 쉴 수만 없어

눈물을 가다듬고 곧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며
총대 메던 손 다시 펜을 고쳐 잡고
오천 년 사직을 노래하며
잠든 겨레 혼 일깨운 이여!

   
▲ 일본군 폭격에 창자 터진 중국여자와 천진난만한 아기를 보며 독립군이 되기로 결심한 지복영 애국지사.

● 지복영 (池復榮, 李復榮 1920.4.11~2007.4.18)

“중경에서 일이었어요. 비행기가 밤새도록 폭격을 해대는데 몇 번이고 방공호를 드나들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도 지겨워서 죽어도 그냥 여기서 죽는다고 방공호에 안 가고 누워있는데 청사를 지키던 분이 빨리 피하라고 해서 얼결에 피하자마자 임시정부 숙소 가까이에 폭격을 가해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중국여자가 아기를 안고 폭격을 맞아 죽었는데 창자가 삐져나오고 다리도 잘라지고…. 그런데 아기는 살아서 엄마 가슴을 기어오르는 거예요. 얼마나 처참한지 일주일을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했어요. 나중에는 학업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워서 학사 박사가 된들 뭣하겠느냐.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나게 하는 것이 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은 거죠”

-3·1여성, 지복영선생 인터뷰, 박용옥, 189쪽-

지복영 여사는 중일전쟁의 처참함을 몸소 겪고 아버지 지청천 장군에게 “저라도 필요하면 써주십시오.”라는 말을 건네었는데 아버지는 이에 “잘 생각했다. 조국 독립하는 데 남자 여자 가리겠느냐 한국의 잔다르크가 되거라”라고 화답했다.

지복영 여사는 서울 종로(鍾路) 출신으로 지청천(池靑天) 장군의 둘째 딸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수학하였다. 1938년에 광서성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이 창설됨에 따라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등과 함께 여군으로 광복군에 입대하여 11월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중경에서 서안으로 적진 깊숙이 이동할 때 함께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때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비밀로 하고 떠났다가 훗날 병이 나서 후방으로 돌아왔을 때 “죽으러 간다더니 죽지 않고 왜 돌아왔느냐?”라는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병 치료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일을 보면서 군 기관지 『광복』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1942년 4월부터 43년 5월까지 안휘성 부양에서 한국광복군 초모위원회 제6분처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1943년부터 45년까지 한국 임시 정부 선전부 선전과, 자료과, 외무부 총무과, 외사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비서실 비서(대적 방송 담당) 등으로 복무하다가 해방이 되고 난 1946년 5월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도서관 사서, 부산 화교중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저서로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가 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더보기>  아버지 지청천장군이 이청천으로 바뀐 사연

“지난날 을지장군이 수· 당의 군대를 대파 하였음이어
어느 곳에 그 뜻이 스며 있는고
이제 왜적을 멸하고자 결심 굳히니
푸른 하늘이 압록강물에 비추었도다”

이는 백산 지청천(池靑天, 1888~1957)장군이 지은 시다. 일본군 현역군인의 몸으로 탈출하였으니 잡히면 갈데없는 총살이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은 너무 헛된 것이니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의 대공지정(大公至正), 공평무사( 公平無私)함을 생각하고 이름을 청천(靑天)으로 고치기로 하였다. 성도 지씨(池氏)는 흔치 않아 남의 눈에 띄기 쉬우므로 모성(母性)을 따라 이씨로 고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이 마음 변치 않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기로 다시금 하늘을 향해 맹세하였다.

-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지복영, 문학과지성사, 1995,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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