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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해야할 소중한 문화유산
보존해야할 소중한 문화유산
  • 이상철 시민기자
  • 승인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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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터 순례의 멋
정감 어린 풍물이 넘쳐나는 장날(5일장) 장터는 지금도 왁자지껄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장날이면 널찍한 장 마당에 이른 아침부터 순회상인(장돌뱅이)인 장꾼들이 옷, 구두, 그릇, 잡화에서부터 야채, 과일, 생선 등 온갖 물건들을 펼쳐 놓고 인근 지역에서 몰려드는 손님들을 맞는다.

   
▲ www.kgfarm.or.kr
지역 특산물은 농협을 통해 출하되므로 많지는 않으나 생산되는 계절에는 풍성하며 지역 주민의 생필품은 여전히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장은 모든 물자가 거래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응축된 터전이기도 하다.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그 곳에 깃들여 있는 온갖 애환은 세월이 변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은 장터에 집결되는 물자의 종류가 달라질 뿐이며 애환의 모습이 변할 뿐이지 장이 우리 삶의 뿌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장날 장터에서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 소박한 인정과 서민적 체취, 갖가지 풍물과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다 보면 도시 생활에서 쌓인 온갖 근심과 고뇌, 미움, 분노, 허탈감, 스트레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거뜬 함을 느끼게 되며 삶의 새로운 활력이 넘치게 된다.

장날 장마당의 왁자지껄함, 그것은 장터 국수가 입맛에 새로운 것 처럼 지루할 정도로 생활에 찌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청량제이다.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장꾼들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숙해 지고 해방감을 맛 볼 수 있다. 장날의 장 마당은 소음이 갖는 상징성이 한껏 드러나는 무대인 것이다.

약 장수의 능청맞은 익살과 노랫가락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의 소박한 오락이자 장이라는 무대에 나 자신이 아무런 부담 없이 출연하는 배우인 것이다.

장터는 이웃과의 교류의 터전이며 우리 민중의 뜨거운 삶의 숨결이 넘치는 곳이다. 민족의 얼과 전통, 민중의 희노애락이 깃든 곳이며 인간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또한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래 문화와 풍습이 천년 배어 있는 전국의 장날을 답사하며 고향의 정취를 맛본다는 것, 얼마나 충만한 삶의 일부분인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성남 모란장(4, 9일)은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한번은 들러 볼만한 곳이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곳의 풍물들은 각박한 생활 속에서 회색으로 바래버린 도시인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옛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서민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삶터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이후 계속돼 오면서 위축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뿌리임을 보여주는 전통 장날의 풍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닷새마다 열리는 장은 쇠전 3백년의 역사를 지닌 영산포 우시장, 지리산 특산물인 감과 밤이 탐스런 경남 하동 장, 옛날 궁중에 진상했다는 자채쌀과 도자기로 유명한 경기 이천 장, 산채와 잣의 주산지로 영화를 누리다 지금은 빛을 잃고 사라져 가는 경기 가평의 청평장, 진하고 짜릿한 막걸리를 맛 볼 수 있는 포천장, 예로부터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장, 용문산 산채 등 명산물이 집결되는 경기 양평장, 열하일기에 나오는 "허생전"의 무대인 안성장, 옛 영화를 굳게 지켜 오고 있는 충남 한산모 시장, 전국 유일한 전남 담양의 죽물시장,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였던 봉평 대화 평창장 등 7백여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면소재지 이하 단위의 장들은 점점 그 규모가 작아지고 옛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장은 그 시대 그 지역 주민의 생활 실태를 반영한다. 그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입는지 생활 속에서 어떠한 물건들을 사용하는지 장터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농민들은 꼭 사거나 팔 물건이 없더라도 구경 삼아 장에 나왔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농촌 마을도 장날이 되면 활기를 띠었다.

장터에 이르는 길은 손이나 어깨, 등, 머리 위에 곡식 자루, 닭, 계란, 채소, 고추 등을 이고 지고 나오는 농민들로 북적거렸다.

또 자주 못 보던 친지 등을 만나 주막에 마주 않아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정담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있었다.

지금은 사용치 않는 옛 장꾼들의 명칭으로는 과일, 음식 등을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다니며 파는 "광주리장수", 둥우리에 쇠고기 따위를 담아 가지고 다니며 파는 "둥우리장수", 병에 술을 담아 들고 다니면서 파는 "들병 장수", 치릉에 물건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파는 "치릉 장수", 닭이나 오리를 어리에 넣어서 팔러 다니는 "어리 장수"가 있었다.

또 장사를 전문으로 하지 않고 어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아무 물건이나 파는 "뜨내기장수", 장마다 나오지 못하고 한 장씩 걸러서 나오는 "간거리장수", 요행수를 바라고 시세를 살피며 돌아다니는 떠돌이 장사치인 "듣보기 장사"가 있었다.

한편 일 없이 장에 나오는 "맥 장꾼", 철이 지나 헐고 싼 물건을 주로 파는"마병 장수", 뱀을 전문으로 잡아다가 파는 "땅꾼", 만병통치 약을 파는 "약장수", 사주 궁합 작명을 하는 "점쟁이"등이 장날 장마당의 주고객이었다.

그러나 전문 장꾼으로서 보부상들의 위치는 대단했다.

짚신에 감 발치고 패랭이 쓰고 / 꽁무니에 짚신차고 이고 지고 / 이장 저장 뛰어 가서 / 장돌뱅이 동무들 만나 반기며 / 이 소식 저 소식 묻고 듣고 / 목소리 높이 고래고래 지르며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쳐가며 / 돌 도부 장사하고 해질 무렵 / 손잡고 인사하고 돌아서네 / 다음날 저 장에서 다시 보세

이 장돌뱅이 타령을 듣다 보면 당시 장마다 순회하며 장사하던 장돌뱅이들의 하루 일과가 눈에 선 하다.

장에 관한 타령은 이외에도 각설이 타령,장타령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장은 민요의 발상지로도 중요하다.

진실하고 가난한 선조 들의 농축된 삶의 현장,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문화의 발상지요 동학 농민운동,3.1독립운동 등 민족의 힘을 모으던 선조 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 마당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