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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전] 문신으로 의병장 활약… 임란때 강화등서 전공수원인물열전 33 - 이민식(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우성전(禹性傳 1542~1593)은 선조대(宣祖代)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경선(景善)이며 호는 추연(秋淵) 또는 연암(淵庵)이다. 현령을 지낸 우언겸(禹彦謙)의 아들이고 화담 서경덕의 제자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사위이며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고향은 옛 지명으로 수원부 호매절 어량천면 외촌이니 지금의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이다. 1561년(명종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8년(선조1) 문과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검열과 수찬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1576년(선조9) 부모 봉양을 위해 수원현감(水原縣監)으로 나와 오랜 폐단을 해결하고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그후 사헌부장령과 성균관사성(司成) 등을 지냈으며 동인(東人)으로 맹활약하다가 1591년(선조24) 대사간 홍여순(洪汝諄)의 탄핵을 받고 파직돼 수원 향리로 물러나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발발나자 경기 지역에서 의병 수천명을 모집해 추의군(秋義軍)이라고 명명하고 강화(江華)로 건너가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합류한후 많은 전공을 세워 대사성에 특진됐다. 이후 왜군을 섬멸하기 위해 경상도 의령(宜寧)까지 추격했다가 지병(持病)으로 죽으니 52세였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됐으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동문수학했던 서애 유성룡은 우성전을 일러 "안목이 당세에 가장 높아 원망을 많이 샀고, 길이 험난하고 곤궁했으나 끝까지 변치 않고 죽었다"라고 서술헤 그의 생애를 높이 칭송했다. 이황에게 성리학을 배운 학자이기도 했으므로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 산실됐고 현존하는 것은 『계갑일록』을 비롯해 『추연수록(秋淵手錄)』, 『이기설(理氣說)』, 『역설(易說)』 등이 있다. 묘는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 능골에 위치하며,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지은 비문을 새겨 1879년(고종16)에 건립한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다. 18세기 말의 실학자 우하영(禹夏永)은 그의 7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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