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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장애인복지관 곳곳에 허점
경기도장애인복지관 곳곳에 허점
  • 오세진 기자
  • 승인 2004.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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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점검] 경기도장애인복지관 화재대피 시설 미비, 안전사고 노출... 장애인 편의 고려 안한 시설물 설치 심각

지난달 30일에 개관한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윤용배, 이하 복지관)에 마련된 화재대피용 원통형 미끄럼틀이 지난 2일 울산의 한 어린이집 화재의 원인이 된 미끄럼틀과 같은 불에 약한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져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복지관은 지난해 12월 완공 전부터 이미 화재대피시설 미비와 장애인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시설 등 문제점이 지적돼 화재 탈출용 미끄럼틀 기둥을 엘리베이터로 대치하고 3층에 화재대피 통로를 만드는 등 약간의 수정을 거쳤으나 여전히 곳곳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 불에 약한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돼있는 화재 탈출용 원통형 미끄럼틀.
본지는 어린이집 화재발생 다음날인 3일 인터넷 장애인 신문 Ablenews(에이블뉴스)의 박종태 논설위원과 함께 복지관을 찾아 화재대피시설과 안전시설, 편의시설 등을 둘러보고 관계자들과 대안책을 모색해봤다.

화재 위험, 감전 위험 노출

권선구 오목천동에 자리잡은 복지관은 대지면적 8,763㎡(2,655평), 건축면적 7,297.42㎡(2,211.62평),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국내 장애인종합복지관 중 세 번째로 큰 규모이지만 복지관에는 화재발생시 대피할 수 있는 베란다나 탈출할 수 있는 외부 경사로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각 층 측면에 설치된 노란색 화재 탈출용 원통형 미끄럼틀은 건물과 직접 연결돼 있는데다 불에 약한 FRP로 만들어져 있어 화재시 불이 쉽게 옮겨 붙는 것은 물론 유독가스까지 내뿜을 확률이 높다.  

통 안쪽은 지름 70cm 정도로 한 사람이 갓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인데 2층과 3층 미끄럼틀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돼 있는데다 경사가 급해, 대피시 장애인들이 통 안쪽에서 부딪혀 부상을 입거나 원활한 흐름이 어려울 수 있다.

   
▲ 미끄럼틀은 2, 3층 출입구와 바로 연결돼 있고 경사가 심해 화재시 통 안에서 장애인들이 충돌하는 등 탈출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 지체장애인들은 이용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지난해 12월 9일 인터넷 장애인 신문 박종태 Ablenews(에이블뉴스) 논설위원이 복지관을 둘러보고 화재대피 시설이 전무하다고 지적해 3층 사무실과 식당 옥상을 연결해 설치한 비상통로에도 허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상통로는 경사로로 돼 있어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지만 통로 출구 바로 앞에는 30cm가 넘는 턱이 설치돼 지체장애인들이 주변 도움 없이 휠체어만으로 대피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건물 내부 어디에도 대피시설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문이나 알림판은 없었다.
 
지하1층에 있는 수중물리치료실 월풀 바로 옆쪽 벽면에는 전기콘센트가 설치, 뿌옇게 서린 수증기가 콘센트에 그대로 닿아 감전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 월풀 욕조 바로 옆으로 콘센트가 설치돼 감전 위험이 있고 욕조는 리프트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편의 고려했나

월풀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1m가 넘는 높이의 월풀은 리프트를 이용해 물 속에 입수하게끔 돼 있다.

간이 계단이나 밟고 올라설 만한 시설이 없어 경증장애인도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한다. 이는 스스로 움직이며 치료할 기회를 준다는 재활 치료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휠체어 사용자용 화장실의 경우 각층에 남녀 공용으로 한 개씩만 지었다가 지난 12월 문제가 제기되자,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에도 한 개씩 설치했지만 화장실 입구 넓이가 70-80cm 정도여서 휠체어 한대가 지나기에도 녹록치 않다.

화장실에 설치된 간호시비상호출벨은 변기 옆이 아닌 뒤에 설치돼 있어 다급한 상황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뒤를 돌아 누르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각 치료실과 교육실 문은 손잡이를 잡고 여닫게 돼 있어 손을 쓰지 못하거나 몸놀림이 자유스럽지 못한 장애인들이 혼자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구조다.

   
▲ 화재대피용 비상 통로 출구 바로 앞에 놓여 있는 30cm가 넘는 턱. 휠체어 장애인들은 누구의 도움없이는 이용할 수 없다.
잘못된 점 시인 문제점 개선키로

지난 2일 어린이집 화재와 관련, 탈출용 미끄럼틀 등 내.외부 시설에 관한 문제가 본지와 박종태 논설위원에 의해 제기되자 3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장애인복지과 관계자 2명과 복지관 관계자 2명은 대책논의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복지관 관계자는 “어제 뉴스를 듣고 오늘 오전에 이미 대책회의를 했었다”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이상 FRP 미끄럼틀을 교체하는 등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 관계자는 “화재시 대피하는 것 보다는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베란다보다는 탈출구 마련에 더 신경 쓴 것이 사실”이라며 “설계 단계 때 장애인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했어야 하는데 못 그랬다”고 털어놨다. 

관계자들은 논의를 통해 철근구조물 등으로 임시 베란다를 만들어 베란다 한 쪽에 원통형 미끄럼틀을 연결할 것과 욕조 옆 콘센트를 즉시 외부로 이동할 것, 대피시설 출구에 있는 턱을 제거할 것 등을 약속했다. 

12년 동안 복지시설 현장을 다니며 ‘장애인권익지킴이’ 활동을 해 온 박종태 논설위원은 “약속이 이행되지 않거나 계속해서 문제가 발견될시 법원에 복지관 사용중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며 “전국에 다녀 본 복지관 중 경기도만큼 심각한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